개인주의자 선언
2020/02/02 17:57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바라보는 세상
#book#문유석

한 때 열심히 봤던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을 쓴 문유석 판사의 책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어떤 내용일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비슷한 생각들로 공감도 많이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재와 다른 국가의 모습들을 통해 성숙한 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이라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시작은 판사 자신의 개인주의에 대해 털어 놓는다. 둘레길 입구까지 갔다가 등산복 차림의 무리를 보고 발길을 돌리거나,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는 114 교환원에게 “왜요?” 라고 답하는 인간 혐오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지만 결국 사회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스스로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양보와 타협을 하고, 괜찮은 척을 해야 하는데 심지어 본인은 그런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 구석에 쌓인 것들을 토해내고 싶을 때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어른이라느니, 사회생활이라는 것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싶은 대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 말이다.

작가는 사회를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에 비유한다. 즉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모두 같은 생각을 강요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다는 것만 알게 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도 말하지만 다르다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공존을 위해 타협하고 불편함을 참아주는 톨레랑스가 필요하다. 나 또한 다른 것을 많이 불편해 하는 편이다. 그게 사람이든 무엇이든. 하지만 친해지거나 익숙해 지지는 못하더라도 큰 피해만 받지 않는다면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다양성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예수님, 부처님 정도 되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런 개인주의가 아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어느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살아간다. 그로 인해 내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이다. 개인인 나 자신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개인과 개인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결국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개인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나 뿐 아니라 타인도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개인주의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주의자로 살다보면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지, 왜 내가 양보하고 내 자유를 자제하며, 타인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하는지. 이런 무수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결국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타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용한 자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고민들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집단 내의 서열이나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찾기가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민주화를 성취한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이며 따지고 보면 더 살기 좋은 곳은 열몇 곳 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그 원인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며, 따라서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책에도 나오고 나도 오래 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의 조직들은 군대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에게 종종 듯는 박정희 시대의 찬양이나 새마을 운동. 한강의 기적의 근간이 된 제조업 기반의 사회 구조나 문화. 분명 그 시대에는 효과적이었고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성공적이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세상도 변한다. 결과에 대한 공로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하는 것이다. 내 기억에 어릴 때는 이기주와 더불어 나 혼자만 생각하는 서구의 개인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는 개인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결과라고 본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내 행복을 추구하고 극대화 하려는 노력이 무슨 잘못인가 말이다. 우리는 히어로에 열광한다. 하지만 내가 항상 하는 말 처럼 세상에 정답은 없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즉 그런 히어로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 열광하는 것이고, 때문에 이런 개인의 불완전성과 비합리성을 고려하고 이해하는 합리적인 자세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비롯한 수직적 가치관이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즉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 되어 줄세우기를 통해 행복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 논리에서는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고, 이런 경쟁의 피라미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도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는게 내 기준에서는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작가의 관찰 결과라고 한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저 ‘남들 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라든지 바라는 것 없이 ‘나와 비슷한 환경이나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든지. 물론 어떤 다른 의도가 담긴 건 아니겠지만 우리의 무의식 속의 기준으로 서로의 비교와 차이가 자리잡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래를 보고 현재에 만족하고 살라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도 말하지만, 그저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책에서는 심리학자인 서은국 교수의 말을 인용하는데, 행복감이란 뇌에서 느끼는 쾌감으로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원천은 인간이며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위의 내용과 연결지어 보면 수직적 가치에 따라 비교를 통한 행복은 달성하더라도 무한하지 않다. 다시 또 계속 위로 올라가기 위해 계속해서 집착하게 될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획일화된 가치관을 버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본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종종듣는 북유럽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다. 실제 유엔 발표에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세계 초강국인 미국 조차 10위 안에 들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와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이 행복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집단주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관계에서 강요나 의무, 복종 같은 것이 생기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를 박탈 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좀 아쉬운 내용이긴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내향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고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행복해지기 쉽다고 한다. 물론 내향적인 사람도 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을 경험한다. 단지 조금의 거리가 더 필요할 뿐이다. 누구나 다양성 속에서 얼마든지 존중을 받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지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좌우 자판기를 철거해야 한다고 한다. 즉 이념을 통해 좌우를 구분하고 진영 논리로 단순화 시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념 또한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불과 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져서는 안되며 구성원들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 공유를 위해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 각 개인 또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작가는 또한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을 배양해야 한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개인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시도하고 실질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보다 남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평론가가 많다고 말한다. 비평할 논리는 얼마든지 있는데,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거나 구조적인 문제를 일부만 건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거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거나…하는 결과론 적인 말로 노력하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반성을 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 다는 냉소로 핑계를 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다. 우리가 영화에 나오는 그런 히어로는 될 수 없지만, 현실 속에서의 히어로들은 종종 보고 들을 수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위기 속에서 모습을 들어내고 실수와 남들의 비판을 감내하면서 그로 인한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들일 것이다.

작가는 서두에 책에 담은 이런 생각들도 결국 개인이 아닌 사회에 관한 것들이며, 개인주의자 본인이 바라본 세상의 여러 얼굴들이라고 언급하면서 한 마디로 요약한다.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나도 그 중에 한 명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인류은 갈수록 더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만큼 사는게 더 힘든 세상인 것 같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기댈 곳이 되어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