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들(3)
2020/03/22 16:40
재택근무를 하면서 든 생각들
#corona#COVID-19#remote-work#black-mirror

COVID-19, 일명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인지 때문인지 재택근무도 어느새 한 달을 지나가고 있다. 처음엔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했었는데 이젠 제법 길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개학도 4월로 미뤄진 만큼 재택도 그 때 까지는 길어질 테고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는 이상 지금 상황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하루 빨리 이 사태가 정리되고 어느 덧 다가온 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근 한달 동안 재택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재택근무

코로나 발생 전에는 국내에서 재택을 하는 회사들은 많지 않았다.(내가 아는 한에서는) 간혹 제한적 재택을 허용하는 곳들은 있다고 들리기는 했으나, 이 계기(좋은 일은 아니지만)가 아니었다면 요즘처럼 많은 회사들이 전사적으로 재택을 시행하는 일은 앞으로도 오랜기간 동안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시작이 어떻든 근 한달 동안 재택근무를 경험해 보고 든 생각은 충분히 좋다라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재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었고 실제로 경험해 보니 그 생각은 더 확고해 졌다.
사라진 출퇴근 시간,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업무 환경 그리고 예상외로 높아진 업무 집중도(장점인가?) 등 겪어보기 전에 했던 걱정들도 어느정도는 사라졌다. 하지만 대비 없이 시작한 만큼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건 업무 공간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아 삶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 졌다는 것이다. 사실 출근을 할 때도 일이 있으면 퇴근 후나 주말에 한 적이 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실 이건 재택근무의 단점이라기 보다 아직 재택에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하게 되서 발생하는 상황이라는게 더 맞을 것 같다.
물론 각자 처한 상황이나 환경마다 받아드리는 자세와 느낌은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좋다라는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민족 of 배달

거의 온 종일을 집에 있다보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거다. 출퇴근을 하면 밖에서 사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젠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한다.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편한 배달음식. 하지만 그 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최소 한끼에 만원 이상이 든다. 나도 처음엔 배달을 애용했다. 그러다 지출이 너무 많아지고 지겨워 질 때 쯤 인스턴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도 질릴 때 쯤 이제는 HMR(Home Meal Replacement), 일명 간편식 또는 밀키트라 불리는 것들을 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더 다양하고 신선하면서 간단한 조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요리에 가깝달까. 오늘도 비어가는 곳간을 채우기 위해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주문을 한다. 그러다 문득 역시 우린 배달의 민족(동명의 특정 서비스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이고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같은 걸 사더라도 대형마트를 가거나 아니면 최소 동네마트라도 가서 직접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당연하게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받는다. 난 SSG의 새벽배송과 쿠팡의 로켓배송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젠 배송이 아닌 배달을 받는다. 지금 사용하는 건 B마트다. 처음 B마트가 시작됐을 때 까지만 해도 과연 될까 싶었다. 그러다 배달료 무료 이벤트를 이용해 사용을 한 번 해봤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회사에서 올해 주력 사업으로 있다는 말에 그정도 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어 내부 직원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예상외로 잘되고 있었고 주변 반응도 좋았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나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단순 배달대행에 그쳤다면 별로 였겠지만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지 못하는 소포장 물품이나 음식, 과일이나 야채같은 신선식품들까지 생각보다 필요한 것 들이 많고 심지어 2만원 이상이면 배달료도 무료이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가서 잔뜩 털어올 게 아니라면 전혀 나쁠게 없었다. 오히려 주변 마트보다 저렴한데 바로 문앞까지 배달이 되니 말이다. 바햐으로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블랙미러

무료함에 넷플릭스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멈췄던 블랙미러를 인기순위로 몇 편을 봤다. 시즌1 몇 편을 보고 접었었는데 이렇게 다시 헤어 날올 수 없는 늪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블랙미러는 시리즈가 아니라 단편이라는 점이다. 보고나서 미래의 모습에 대해 잠시 상상해 봤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한 가지 일 것 같은, 변하지 않는 생각 중의 하나는 부의 독과점이다. 특정 인물 혹은 회사나 집단이 부의 대부분을 소유하게 되고 사회는 계층화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계층이 얼마나 어떻게 나뉘고 각 계층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긍적적인 모습이다. 자본주의의 끝은 공산주의라고 했던가. 얼마 전까지 많이 들렸던 기본소득이니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동의 의미는 변한다. 더 이상 인간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삶을 즐기는데 시간을 사용한다. 여기서도 많은 상황들이 있겠지만 어찌보면 상향 평준화라고나 할까. 할 말은 많은데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하려니 어렵다.
두 번째는 처음과 동일하게 계층 구조는 단순하지만 하위 계층에 속한 인류는 상위 계층을 위해 살아간다. 어찌보면 양 극단이 더욱 벌어지는 구조다. 지금도 사회 구조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부의 대물림, 빈익빈부익부의 세상이 오고 있다고들 한다. 이 구조가 점점 심해져 이분화 되고 누군가의 통제나 제재가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모습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몇 가지가 더 떠올랐다. 그러다 결국 상상하고 있는 모습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이상 하지 않았다. 바로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사회적 계급을 정작 의지와 노력으로는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 깔려있는 암울한 전제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다른 것들보다 현실적이고 들어맞을 것 같은 느낌이 별로였다.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 속에서 상상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이 별로다. 글로 옮기는 것도 여기까지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