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에 대하여
2019/09/08 11:23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드립니다.
#thank_you

회사 창립기념일로 오랜만에 출근을 안하는 금요일 저녁, 친한 후배 커플에게 갑자기 데이트하냐는 연락이 왔다. 뜬금없는 연락에 혼자 할거라고 답했더니 대뜸 자기들도 같이 껴서 더블데이트를 하자고 받아친다. 그렇게 순식간에 더블데이트지만 2+1이 되는 저녁 약속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연락을 잘 하는 편이 아닌데다 그들도 바빠서 명절이나 생일 같이 이벤트가 있을 때나 연락을 하고 이렇게 게릴라성으로 일년에 한 두번 보는게 다였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부터 자주 보기도 했고 졸업 하고 나서도 둘 다 취업 준비나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해서 조금씩 도움을 주는 척 꼰대 역할을 하면서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봐도 편한 후배들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몇달 전 까지만해도 남자 후배는 이직에 성공했다고 연락이 와서 기뻐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조금은 수척한 모습이었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연락이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도움이 될까하여 조언도 해주고 자료들도 건네주고 했었다. 이직 했다는 결과만 듣고 연락이 없어 바쁜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매형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해서 죄송한단다. 순간 뭐라 할 말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짧게 위로를 전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지난 얘기들과 근황들로 회포를 풀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한 잔씩 하는데 맘이 힘들었는지 조용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매형은 나보다도 어렸고 아직 어린 아이들도 둘이나 있었다. 그런데 사고로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심지어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으면서도 뭐라 위로를 해 줄 말이 없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조용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배는 이전과 다르게 지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게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생긴 일로 남겨진 가족들과 부모님을 보면서 왜 그런 일이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 가족들에게 일어났는지 원망도 스럽고, 사람들을 만나는것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더 힘들 누나와 가족들을 위해 버티고 있다고. 돌이킬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게 본인이 할 일인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알면서도 살면서 잘 잊게 되는 말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있다가 그 후배들은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난 별로 해준게 없는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은 항상 나에게 고맙다며 일이 있을 때 마다 먼저 연락을 하고, 때론 위로를 때론 축하를 해줬다. 내가 뭘 해준게 없는데 뭐가 그렇게도 고마운지. 그런데 이날 따라 고맙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도 그렇지만 내 주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잘 하기는 하는 것 같다. 밥 먹으러간 식당에서, 출퇴근 버스에서 내리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본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고맙다는 말에는 그에 보답하고 갚으려 애쓴다는 책임의 의미도 같이 담겨 있다. 그 아이들이 나에게 했던 고맙다는 말에도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고맙다는 말에도 그 책임은 모두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에는 도움에 실망되지 않게 살며 나 또한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책임을.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에는 나도 당신의 곁에 있겠다는 책임을.

그렇다면 살아있는 것에 고맙다는 말에는 어떤 책임이 담겨 있을까?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열심히 잘 살아가야 할 책임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본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말하던, 우리의 인생에 있어 행복할 권리를 넘어선 행복할 책임. 아마 아픔을 겪고 만난 그 후배가 말한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카톡을 보냈다. 힘내라고 그리고 먼저 연락해줘서 나도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