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번역투라거나 군더더기(불구하고가 없어도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가 붙어있는 말이라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그 군더더기가 없을 때 보다 있을 때 전해지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사용할 만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걸로 선택이 쉽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중요한 선택과 그 결과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그 선택이 옳든 그렇지 않든.
예전 창업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없었던 난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 이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난 대부분 반대를 외친다. 경험상 확률적으로는 그 편이 더 나은 조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으로 옮긴다. 그런 경우엔 마음속으로 진심을 담아 응원해 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그렇다. 좋아했던 그 이유로 헤어진다라는 말도 있듯이, 처음에 누군가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좋아할 수 있다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는 실패할 이유가 수백가지가 되고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고, 맞지 않는게 수두룩 하고 매번 다투더라도 사랑할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해내고 말겠다는, 함께 하겠다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용기 같은 것들이 담겨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다.
누구나 힘이 드는 순간이 있고, 남 모를 아픔과 슬픔을 간직하기도 하고, 잘못된 길인가 잠시 서서 헤맬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다시 살아간다.
하지만 긍정적일 수 만은 없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도, 싫어질 수도 있다. 그 선택 또한 어찌보면 의지고 용기다. 결과가 어떻든 그건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결과를 미리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결과만 가지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다.
난 아직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부족하다. 말 처럼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회피보단 선택을 하고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
피곤했던 주말 그리고 월요일 새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글을 쓰고 있다. 힘든 시기 우리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