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거나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바뀐다” 또는 “시간이 지나면 바뀌겠지” 등등의 말로 누군가의 행동이 바뀌길 믿거나 기대하고 또는 예상할 때가 있다. 또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등의 말로 그런 믿음과 기대를 없애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은 변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아주 드물게. 하지만 대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면 “사람이 변한다”라는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여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변한다는 게 어떤 것이고 무엇이 변하는 것일까?
우리가 보통 누군가가 변했다고 생각하거나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행동’이다. 즉 그 사람이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전에 비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뿐 아니라 그 사람 또는 나 자신의 변화 그로 인한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의 변화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행동은 대체로 상대적이고 상황에 의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은 동일한데 그 사람의 행동’만’이 달라졌다면 그렇다고 답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이다. 즉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그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말 들도 살펴보면, 바뀐다는 말 앞에는 그 조건(상황)이 함께 온다. 지위가 변했거나, 시간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거나 무엇인가는 변해야 사람의 행동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이었던 사람이 내가 강자가 되어 잘해준다고 그 사람이 좋게 변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단지 상황에 맞게 행동이 변했을 뿐 여전히 다른 약자에겐 같은 행동을 할 테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연애를 하면서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오빠 변했어”류의 말이라고 한다. 정말 2~30년 동안 살아오면서 굳게 생성된 한 사람의 인격이 연애를 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변한 걸까. 그렇지 않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연애 전 또는 초반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관계가 변했고 상황이 변했다. 즉 그 남자는 원래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인 거다. 단지 그 상황을 미리 겪어 볼 수 없었을 뿐이다. 물론 그런 남자들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렇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난 “~만 하면 잘해줄게” 식의 조건부 공수표를 잘 믿지 않고 좋게 생각하지도 않는다(실제로 그렇게 할 지도 의문이고, 보통은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해 주거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신뢰가 간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부정적이고 비희망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생각만큼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란 서로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동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선의를 가진 누군가의 행동이 피해를 주고 악의를 가진 누군가의 행동이 도움이 됐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인식하는 우리는 아마 의도와는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이유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내가 전혀 다른 나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진짜 나 인가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이 둘 모두 잘 가꾸는 것은 중요하다. 외적인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고, 이 둘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정말로 어떤 한 사람의 본래의 성격(인격)이 변하는 것은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생겨야만 가능하다. 마치 한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한 사람의 가치관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혹시나 사람이 변하지 않는 다고 아쉬워하거나 변했다고 실망하지도 말자. 기대한다고 해서 어차피 변할 사람이 아니고, 바뀌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졌을 뿐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변화를 기대한다면 상황을 바꾸거나 바뀌기를 기대해보자. 물론 행동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변했다고 믿지도 말자. 그저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일 뿐이다.